"전기가 중심되는 전기화 시대, ‘큰 기술’ 개발 통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낼 것"
"전기가 중심되는 전기화 시대, ‘큰 기술’ 개발 통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낼 것"
  • 이훈 기자
  • 승인 2023.06.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김남균 한국전기연구원 원장

한국전기연구원(KERI)는 1976년 설립 이래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전력망 및 신재생에너지 ▲초고압직류송전(HVDC) 및 전력기기 ▲전기추진 및 산업응용(전동기, 로봇, AI 등) 기술 ▲나노신소재 및 배터리 ▲전력반도체 ▲전기기술 기반 융합형 의료기기 등 국가 기본 인프라부터 첨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기 분야 연구개발(R&D)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차세대 전력전송 기술인 ‘초고압 직류송전(HVDC)’분야 전력기기의 성능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세계적 규모의 시험인프라를 구축했다. 2023년을 맞아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큰 변화를 맞았다. 제 15대 김남균 원장<사진> 체제를 맞은 것이다.김 원장은 1990년 전기연구원 입사 이후 약 30년 동안 전력반도체연구센터장, HVDC연구본부장, 연구부원장과 원장 직무대행을 차례로 역임했다. 특히 전력반도체 연구를 수십 년간 뚝심있게 수행해 국내 전력반도체 산업의 기술 기반을 닦았다. 모든 일상에서 전기가 중심이 되는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김 원장을 만나 KERI를 이끌어 나갈 각오와 계획을 들어봤다.

늦었지만 원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후 약 5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1월 취임 이후 바쁜 날들을 보낸 것 같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여러 분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영광스러운 KERI 원장에 선임되어 기쁘고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1990년 20대의 나이로 연구원에 입사해 올해로 벌써 34년 차를 맞았습니다. 저의 고향과도 같은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대내외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원장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과 뜨거운 사명감도 느낍니다. 그동안 많은 지자체 및 유관기관, 기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인사를 드리고 상호 협업 방안을 모색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원장 임기 내 기관의 경영 방침을 제시할 ‘기관운영계획서’ 작성도 최근 마무리했습니다.

KERI의 인지도와 위상이 커진 만큼 밖에서 우리 연구원에게 바라는 역할과 기대치가 대단히 큽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3년간의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포부가 있습니다. 저를 앞세우기보다는 연구원이 빛나고, 연구원을 앞세우기보다는 대한민국이 빛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취임사에서 ‘전기화’를 비전으로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전기화(Electrification)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왔습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 범위와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의 전기화는 시골 마을에 전깃불이 켜지고, 공장이 전동화가 되는 등 전력망의 확장으로 이뤄졌습니다. 21세기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자연 에너지가 전기로 변환되고, 전력망에서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전지(배터리) 기술의 발달로,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전기차와 전기선박, 전기항공 등 수송 체계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즉, 2차 전기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3차 전기화 시대에는 인간과 사물을 초연결하는 단계까지 이를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완수는 성공적인 전기화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전기화 시대의 발전 과정에서 KERI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맞이할 것이고, 그 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소명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가 취임사에서 비전을 ‘전기화로 미래를 여는 KERI’라고 밝히며 직원들의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당부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력산업과 전기기술을 책임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임직원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에 임하면서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이 곧 대한민국의 국적 기술이고, 우리가 행하는 시험인증 서비스와 성과확산, 연구행정 활동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 그리고 전기화 시대 선도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명한 지향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KERI 큰 기술’ 개발 도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 연구원은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왔습니다. 특히 기업체 애로기술 지원 등을 통해 꾸준히 기술 로얄티를 확보해 왔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연구 생산성의 대표 지표로 연구비 투자 대비 기술료 수입이 5%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재단의 연구 생산성에 필적할 만한 것으로서 이제 KERI의 기술이 실험실의 문턱을 넘어 산업현장에 활용되는 정도가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 이상의 것을 목표로 우리가 도전에 나설 때라고 생각합니다. ‘큰 기술’은 국민 또는 인류에게 크나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거나 산업적으로 임팩트가 매우 커서 100억원대 이상 혹은 1,000억원대까지의 기술료 수입이 가능한 기술입니다. 초대형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소 5~7년 이상 혹은 최장 30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큰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흔들림 없이 연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나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 임기 내에 ‘KERI 큰 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몇 개의 팀을 발족하려고 합니다. 필요하다면 기본사업 운영 제도, 성과보상 제도, 성과평가 제도를 다시 살펴볼 예정입니다. 큰 기술에 도전하는 문화와 도전 의식도 중요합니다. 한 팀이 거의 한 세대의 긴 기간 동안 팀원 전원의 총력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도전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할 예정이며, 그런 도전을 응원하는 문화를 가꾸어 나갈 것입니다.

최근 준공한 ‘HVDC 시험인프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HVDC는 초고압 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 즉 발전소에서 생산된 대용량의 전력을 고압 직류로 변환해 원거리까지 전송하는 기술입니다. 직류송전은 전력 공급 과정에서 손실이 매우 작아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고, 케이블을 이용해 장거리 송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도심지 설치에 대한 제약이 크지 않습니다. 전자파의 발생이 매우 작아 사회적 수용성이 높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또한 HVDC는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생산한 전력의 송전에 특화된 기술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는 신규 도입되는 전력망에 HVDC 계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최대 수요처인 수도권에 대용량으로 보내기 위해 HVDC 관련 사업이 진행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HVDC는 국내에서 아직 적용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관련 전력기기·설비의 신뢰성과 안전성에 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 HVDC 전력기기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전문 시험 인프라가 없다 보니, 국내 업체들이 해외 시험소를 찾아 시험·인증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 납기 지연, 핵심 설계기술 해외 유출 등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 시험을 받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HVDC 전력기기에 대한 전문 시험인프라가 조속히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산업부, 경남도, 창원시, KERI가 힘을 모아 약 20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투입해 2020년 6월부터 ‘HVDC 시험인프라 구축 사업’을 추진해 왔고, 올해 약 3년 만에 준공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인프라 규모는 부지면적 1만 8,622m2(5,643평) 및 건축면적 1,540m2(467평)입니다. 현재 HVDC 시험동 내부에 시험장비 반입까지 모두 마무리했고, 장비 시운전 및 내부 사용절차 등을 마무리한 후 올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인증 업무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번 시험인프라는 국내 HVDC 관련 전력기기 업체들의 제품 개발을 신속하게 지원해, 기술력을 높이고 수출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또한 시험을 받기 위해 매년 국내·외 수천 명의 전문가들이 경남·창원을 방문하고, 이에 따른 지역경제 소비 활성화 효과도 매우 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HVDC 시험인프라처럼 연구원이 최근 지역과 호흡하고 있는 성과들이 돋보입니다.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는 캐나다 워털루 대학과 함께하고 있는 ‘제조 AI’로, 기업 제조 현장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사업입니다. 2020년 경남 창원 소재 기업부터 시작해 작년부터는 부산 지역기업을 대상으로도 제조 AI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국내 최초로 AI 기술을 활용해 ‘핵심부품 고장 상태 진단’, ‘조립 지능화’, ‘효과적인 공구관리 및 제품별 최적 맞춤 가공’ 등 업무를 수행했고, 그 결과 수혜 기업들의 업무 효율성 제고, 작업환경 개선, 제품 품질 및 생산성 향상 등 큰 효과를 봤습니다.

또 창원 강소특구의 기술핵심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이 보유한 똑똑한 ‘지능 전기기술’을 창원 기계산업에 적용해 지역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망 기술을 발굴해 사업화를 추진하고, 관련 기업들의 성장을 도우며, 투자 연계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역 중소·중견기업들이 제품개발 단계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전에 예측하고, 해결 방안까지 제시해 주는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 기업지원 사업도 있습니다. 그동안 15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동차, 전력기기, 해양산업, 건강, 관광, 건축,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지원을 수행했고, 약 270억원 규모의 제품개발 및 생산기간 단축 효과를 이끌어내며 업체들의 기회비용 절감 및 매출 증대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외에도 지역 과학 대중화를 목표로 학생들을 위한 과학체험 행사 개최, 연구원 초청 견학 등을 상시 진행하고 있고,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는 등 지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KERI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전기 기술의 범위가 넓고, 이해 관계자도 많은 만큼 우리 연구원의 임무와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KERI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크게 3가지로 설정해 경영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미래를 선도하는 연구원’입니다. 전기화의 길을 뒤쫓아 가는 추격자에서, 융합·협업·창의 기반 위에 전기화의 신 영역을 제시하는 연구원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전략적 사고로 기술을 뛰어넘어 신산업을 창출하고, 전기·전력 분야 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 기관으로서의 위상과 리더십을 확보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업이 찾아오는 연구원’입니다. KERI는 국가 전략기술을 비롯한 수많은 산업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가 핵심기술의 초격차 확보를 위한 핵심거점이 돼야 합니다. 또한 기술 개발 늪지대를 앞장서서 돌파해 상용화까지 이끄는 전위대 역할을 해야 합니다. 특히 연구원의 전력기기 시험인증 분야는 자랑스럽게도 연간 약 1,000개의 국내외 기업이 파트너로서 함께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더욱 시험 범위도 확장하고 시험 서비스의 질적 수준도 높일 것입니다. 즉 KERI는 원천 기술의 보고이며 기업 애로기술 해결의 최적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세 번째는 ‘국민과 함께하는 연구원’입니다.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또 개발할 기술을 통해 국가의 에너지 안보, 국민 에너지 복지 향상에 기여할 것입니다. 새로운 전기 기술에 바탕을 둔 국가 에너지 정책 및 전력 기술 개발로 국민들에게 전기화 세상의 혜택을 누리게 해 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전기기술 기반의 난치병 조기 발견 및 치료 장비 개발 등으로 국민 건강과 행복 지수를 높임으로써 KERI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조직 문화도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격언이 있는데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서 ‘큰 기술’에 도전하는 문화를 강조했는데, 대형성과는 여러 사람이 잘 어울려 힘을 모아야지만 가능합니다. 임직원 모두가 함께 나아가고, 함께 가면서도 구성원 각자가 팀이나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본인의 역할을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원장으로서 동료의 공헌과 기여를 인정하고, 또한 동료의 공로를 드러내고 칭찬하는 조직문화의 확산과 정착을 위해 ‘당신 덕분입니다’와 ‘덕분에 우리는 최고’ 운동을 펼치겠습니다.

동료의 단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바라보고, 그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점이 크게 자라서 단점을 가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봅니다. 동료의 존재 자체가 고맙고, 그 고마움을 자주 표현하고, 동료의 기여를 우리가 앞장서서 드러내어 주고 칭찬하는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원장으로서 또 하나의 소망은 연구원이 매일 아침 출근하고 싶은 직장이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세대·직종·지역 그리고 보직자-비보직자간 올바른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행복한 연구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기저널 구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최근 ‘전기는 공기’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공기가 없으면 안 되는 만큼, 이제는 전기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전기화(Electrification)’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KERI의 역할과 책임도 더욱더 커지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많은 역할을 했지만 좀 더 미래를 위한, ‘큰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국민과 국가, 인류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성과가나올 수 있도록 원장으로서 열심히 기반을 다지고 지원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훈 기자 hoon@kea.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