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동절기 천연가스 수급 안정화 전략과 시사점
EU의 동절기 천연가스 수급 안정화 전략과 시사점
  • 이상열
  • 승인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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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천연가스 시장 동향

2022년 하반기에 접어들며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의 상승세가 더욱 매섭다. 지난 8월 20일,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인 가즈프롬(Gazprom)이 시설정비를 이유로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드스
트림1(Nord Stream-1) 라인을 통한 가스공급을 8월 말일부터 3일간 중단하겠다고 예고하자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TTF)은 일주일도 안 돼 $90/MMbtu을 돌파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7/MMbtu 수준에서 형성되던 2021년 1월 가격과 비교하면 열 두 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동북아 LNG 현물 가격(JKM)도 유럽 가격에 영향을 받아 8월 25일 기준 $70/MMbtu를 돌파했으며, 그동안 국제 가격의 급등세와 다소 탈동조된 움직임을 보이던 미국의 현물가격(HH)도 상승랠리를 시작하며 2008년 셰일혁명 이후 처음으로 $10/MMbtu선을 곧 돌파할 기세다.

최근 러시아의 對유럽 가스 공급 축소의 영향을 완충해주던 서방의 가스공급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의 최대 LNG 수출기지 중 하나인 텍사스 프리포트(Freeport)가 지난 6월 폭발사고로 운영이 중단된 가운데 올해 연말께나 정상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파업사태 등으로 공급에 차질을 빚기도 했으나 EU 역내 천연가스 생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노르웨이 가스전도 9월 예방정비를 앞두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호주 정부는 자국의 가스 가격 안정화를 위해 LNG 수출 제한 조치(ADGSM, Australian Domestic Gas Security Mechanism) 발동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지속된 이례적 폭염으로 에너지수요 급증을 경험한 세계 각국이 동절기를 대비한 치열한 가스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세는 당분간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동절기 대비 천연가스 수급안정화 추진 전략

러시아의 공급 조절에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이렇게나 크게 요동치는 근본 원인은 유럽의 높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에 있다. 유럽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규모는 연간 약 155bcm수준으로 역내 전체 가스 수요의 약 40%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전인 지난해 12월에 이미 벨라루스를 관통해 서유럽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YAMALEurope)라인을 차단한 바 있으며, 개전이후 서방의 對러제재에 대응하여 루블화 결재 미이행, 시설 정비 등을 이유로 對유럽 가스공급량을 수시로 감축하고 있다.

전쟁발발 직후인 지난 3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ion)는 러시아의 가스공급 완전 중단에 대비하기 위해 EU국가들은 동절기가 도래하기 전인 오는 9월 말까지 가스 비축량을 높여 역내 가스 재고 수준을 90%까지 확보할 것을 제언한 바 있다. 비축물량의 확보 방안으로는 우방국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산 가스의 대체 물량 확보, 에너지수요관리를 통한 수요 감축, 재생에너지 보급 촉진 등을 제시했다. 이중 LNG 수입확대를 통한 러시아 가스 수입 대체 전략은 IEA와 EU 집행위원회가 목표로 제시한 러시아산 가스 대체 가능 총량의 각각 30%, 50%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주요한 대응 전략이다.

그러나 기체 상태로 다뤄지는 천연가스는 석유와 달리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걸쳐 인프라 의존도가 높아 단기간에 새로운 공급망을 구축하기가 매우 제한적이다. 전쟁이후 EU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로부터 LNG 형태의 천연가스 수입을 꾀하고 있지만 유럽 내의 제한된 LNG 수입 인프라로 인해 막대한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국제 유가가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하락세를 시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천연가스 가격은 러시아에 의한 수급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이유다. 러시아의 공급 축소에도 불구하고 EU가 가스 비축 확보에 다각적 노력을 전개한 결과 전쟁 초기인 지난 3월에 20%대에서 머무르던 역내 가스 재고수준이 8월 말 기준 약 75%수준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무적인 재고 확충 추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가스공급이 조기에 전면 차단되거나 지난해 동절기처럼 올해에도 이례적인 한파가 지속된다면 2023년 봄까지의 유럽 역내의 안정적인 가스 공급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다.

IEA는 지난 7월 18일, 유럽이 올해 동절기의 안정적 가스 공급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수요 감축을 위한 경매제도 도입, 전력부문 가스 사용 최소화, 가정 부문 냉방수요 제한, 유럽 전역의 전력 · 가스 사업자 간 협력 강화, EU 전체 차원의 비상계획 발동 등을 아우르는 5대 긴급조치를 제안한 바 있다. 또한 EU 집행위원회는 7월 22일 EU의 비상 수급계획(emergency plan)을 위한 입법문서(communication)인 ‘Save Gas for a Safe Winter’을 발표했다. 해당 문서는 EU 국가들이 역내 가스수급 안정화를 위해 최근 6개년(2016~2021년) 동절기 평균 소비량 대비 15%의 가스수요를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의견수렴과정에서 EU회원국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낮은 일부 국가들이 일괄적 가스수요 감축계획에 부정적이었으나 지난 7월 26일 EU 에너지장관 긴급 승인회의를 통해 최종 합의됐다. 해당 계획은 가스수요의 15% 감축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산업부문의 가스소비 감축 인센티브 제도 마련, 타에너지원으로의 연료 전환 지원, 냉난방용 에너지 소비 감축 등을 제시한다.

각 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산업부문의 가스소비 감축 인센티브 제공 제도는 대규모 기업이 천연가스 소비를 감축했을 때 정부 차원의 지원금과 같은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인센티브 제공 방안에는 IEA가 제안한 대규모 산업 소비자의 가스 소비 절약에 대한 보상 경매제도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대규모 산업 사업자 간 스왑계약을 허용해 타이트한 공급 하에서 수급을 최대한 효율화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가스 소비자들의 타연료로의 전환 지원은 천연가스 수요자들의 재생에너지와 청정 에너지원으로의 연료 전환을 적극 지원하는 내용이다. 원자력으로의 전환에 대한 지원은 국가별 상황에 따라 타당한 경우에 활용하며,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에너지로의 전환도 개별 국가의 상황에 따라 긴급한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냉 · 난방 소비 감축은 정부주도의 에너지절약 캠페인 시행으로 일반 시민에 천연가스 소비 감축의 필요성을 알리고 건물의 냉 · 난방 온도를 제한해 에너지수요관리를 효율화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EU 회원국들은 이러한 정책수단을 기반으로 자국의 수요감축 계획과 함께, 가스 공급중단 사태가 실제 발생할 경우 개별 산업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 순위를 설정하여 제출해야 한다. 공급 중단의 순위는 각 국가별 상황에 따라 설비가동의 필수성과 사회적 우선순위, 국가 간 파급효과, 공급 중단에 따른 설비 손상 가능성 정도, 가스 대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EU 회원국은 9월 30일까지 수요 감축 및 공급중단 절차 등을 포함한 동절기 수급대책을 수립해 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이 제출한 계획이 EU 차원의 가스 수급안정화 목표를 달성하는데 충분한지 검토한다.

겨울 대비 선제적 가스 수요관리 시작해야

EU가 LNG 시장에 뛰어들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전통적인 LNG 수입 국가들의 구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LNG 도입물량의 약 70% 이상을 유가에 연동한 장기계약으로 도입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공급 자체의 불확실성은 낮지만 여전히 30%의 수요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LNG 현물도입을 통해 충당해야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 경제와 물가에 매우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올해 동절기 국제 천연가스 시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향후 전개방향, 글로벌 경기변화, 동절기 기온 추이 등으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상황으로 LNG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EU 처럼 국가 에너지 수급 거버넌스 차원에서의 동절기 가스 수급 안정화 대책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특히 EU가 추진하고 있는 타연료로의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대국민 캠페인 시행을 통한 건물의 냉난방 온도 조절 등의 전략 등을 우리 상황에 비추어 참고할 만하다.

특히 국내 가스 수요 관리에 있어 발전부문에서의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발전용 가스는 우리나라 전체 가스 수요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력도매시장에서 타 발전원에 대한 정산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계통한계가격(SMP)도 가스발전기가 대부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발전용 가스의 수급관리는 전력산업의 건전성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국제 가스시황 및 국내 가스수급 상황 등에 따라 유연한 발전 믹스의 조절을 통해 발전용 가스수급의 안정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EU 각국이 에너지수급 안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석탄발전량을 높이며 가스 수급 안정화를 꾀하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석탄발전 감축이라는 방향성은 유지하되, 올해 동절기가 에너지 안보적 측면에서 비상상황임을 고려하여 한시적으로나마 석탄발전의 탄력적 운영을 통해 발전용 가스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한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올해 동절기 석탄발전기에 대한 미세먼지계절관리제의 탄력적 운용 등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국내 가스 수요의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도시가스는 대형사업장을 통한 연료전환 확대와 건물부문의 냉난방 온도조절 캠페인 확대 등을 통한 수요관리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한국가스공사가 가스 수급위기 시 대형 산업체와 체결하고 있는 ‘LNG대체연료 계약’ 제도를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LNG가격 급등 시 수급관리를 위해 도시가스를 LPG나 중유 등 타 연료로 전환하는 업체에 대해 가스공사가 실비보상에 기반 해 지원하는 제도로 이번 EU가 추진코자하는 산업부문의 자발적 연료전환에 기반 한 수요 전략과 유사하다. 다만 EU는 기업 간 거래와 경매제도 등 보다 시장원리에 가까운 인센티브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되 본 제도에 대한 산업체의 자발적 참여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적극 홍보하고 적용범위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한국에너지
공단이 동절기에 국한해 시행되고 있는 ‘도시가스 수요절감 프로그램’ 역시 올해 가을부터 조기 시행해 가스 소비를 선제적으로 감축하는 것도 대형 사업장의 가스 수요를 선제적으로 감축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동절기 가스수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전력, 가스요금의 원가주의 이행이다. 에너지안보가 위협받는 시기일수록 에너지 가격이 제 기능을 해 수급을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축소와 하절기 폭염발생에도 불구하고 EU가 역내 가스 비축량을 의미 있게 확보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이례적으로 높게 지속된 가스 가격이었다.

급등한 가스 도매가격이 최종 소비자 요금에 상당부분 반영되며 가스수요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논리가 나타난 것이다. 결국 가격 기능이 회복될 때 에너지 소비감축의 여지가 있는 일반 소비자들의 절약이 시작되며 대규모 소비처의 효율향상에 대한 투자유인도 발생한다. 물론 에너지가격 상승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영세사업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촘촘하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올해 동절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속되고 있는 천연가스發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가 가장 극대화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를 중심으로 산업계와 일반 국민 모두가 국가적 위기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

이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 미래전략팀장 keaj@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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