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앙스
뉘앙스
  • 박경민
  • 승인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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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의 단어가 가치중립적이고 자연과학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뉘앙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좀더 피부에 와 닿는 단어인 기후위기, 기후재난으로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에는 그래야 기후문제를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닌 지금 당장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게 바꿔나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내포돼 있다.

우리는 뉘앙스 차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뉘앙스(nuance)’의 사전적 정의는 ‘색상, 어감, 음색, 형태, 감정 등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이다. 메리암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뉘앙스의 어원은 구름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명사 ‘nubes’에서 찾는다. 구름을 보면 햇빛에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그 색감과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자연현상에서 비롯된 단어로 보인다. 이후 중세 프랑스에서 neu, nuer 등으로 몇 번의 변형을 거쳐 색조를 의미하는 nuance로 단어가 만들어졌다. 영어는 이 프랑스어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미묘한 차이나 변화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실제로 우리는 뉘앙스에 대해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화를 하면서도 내용은 물론 당시의 기분과 감정,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소통에도 무게를 둔다. 표정과 낯빛을 살피고 상대의 기분을 고려한다. 진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텍스트나 말 그 자체보다 숨겨진 비언어적 표현에 담아내기도 한다. 뉘앙스의 어원처럼 구름과 하늘, 햇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색감은 날씨와 기온, 습도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기분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였던 롤랑 바르트의 강의와 세미나를 엮은 유작 ‘마지막 강의’에는 그가 짚어낸 뉘앙스의 개념이 등장한다. 그는 구름의 반사광이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아주 작은 차이들로 인해 개별성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존재를 제대로 규정하려면 고유한 무늬와 색깔, 뉘앙스를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존재를 다른 것과 구별해주는 주요한 요소 중 하나가 뉘앙스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개별성은 우리가 각자의 이성과 감정을 갖고 세상 만물을 감각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발현될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고민하고, 결심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개별적인 내가 존재하게 된다. 이런 개인이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지켜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기후 문제는 우리의 기분과 태도, 우리가 쾌적하게 삶을 영위하며 형성해 온 가치관과 개개인의 뉘앙스의 변화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예컨대 지금은 으레 계절마다 먹는 제철음식이나 꽃 구경, 편안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 가족, 친지와의 교류 등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4월에도 30℃를 넘는 더위가 찾아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즐긴 벚꽃놀이의 여흥이 가시기도 전에 무더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거 학자들이 주장했던 것과 같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 의 용어는 최근 기후위기, 기후재난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각국 정부의 노력과 정책적 변화도 진행 중이다. 자연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뉘앙스를 민감하게 인지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해야 할 때다.

박경민 기자 pkm@k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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